작가소개
[비평] 현대인의 불안과 욕망, 그 위태로운 카드탑: 작가 전병택
1. 현대인의 초상: 선택의 기로와 불안한 순응
현대인들은, 아니 어쩌면 인류는 출현부터 다양한 선택을 해왔을 것이다. 먹고 살기 위해, 욕망을 위해, 성공을 향해 매일 매순간 어떤 카드를 내밀어야 하는지 혹은 집어야 하는지를 말이다.
하지만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느냐”는 스스로의 질문에 대한 적절한 대답은 무언가를 선택하는 것 이상으로 어렵다. 그건 마치 우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에 ‘무(無)에서 와서 무로 돌아가는 것’이라던 노자의 말처럼 궁극적 근거를 대기 곤란한 형이상학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어찌 범인(凡人)으로서 떠난 것이 생(生)이고 돌아온 것이 사(死)라는 의미를 쉽게 독해할 수 있겠는가.)
때문에 많은 이들은 현실에 적응하고 사회구조에 순응한다. 원한 것이든 아니든, 영역 밖보다 영역 내가 편한 것이든 아니든 그저 주어진 삶에 의탁할 따름이다. 실제로도 현세인은 있는 그대로의 가시적 세계가 무위의 세계보다 훨씬 무거움을 느끼며 살아간다.
공동체의 규율과 조직 내의 위계 속에서 선택의 기로는 쓰나미처럼 들이닥치지만, 당장의 결정 앞에 딱히 저항다운 저항을 할 수조차 없다. 되레 자본계급이라는 새로운 계급과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태생적 신분 앞에 좌절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이게 바로 현대인들의 삶이며 불안한 여정의 짙은 단면이다.
2. 시간의 감옥: 52장의 카드와 365일
작가 전병택은 이러한 현대인들의 삶을 **‘카드(게임용 카드)’**로 재현한다. 스페이드, 다이아, 하트, 클로버에 들어 있는 의미와 수, 조형방식에 따라 다양한 이야기들을 펼쳐낸다.
작가에 의하면 52장인 카드의 수는 조커를 더해 365다. 52주인 년 단위와 년일 수가 교묘하게 접목된 수이다. 이는 전병택이 어째서 카드를 예술표현의 주요 소재로 ‘선택’하게 되었는지 일러준다. 즉, 인간이 정한 시간의 표준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게 삶이라는 의미로써의 카드인 셈이다.
3. 쌓아 올린 카드탑: 불안과 계급의 이중주
카드 속에 표현된 각종 캐릭터와 구조는 보다 직접적인 내러티브를 담보한다. 일단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인 **‘쌓아 올린 카드’**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첫 번째는 매사에 불안한 인간들의 모습이다. 일정한 프레임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벗어날 구멍조차 없이 일상을 소화하고 있는 우리네 초상을 투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의 초상은 언제 어느 때 무너질지 모르는 위기의식을 배경으로 한다.
두 번째는 계급의 문제요, 욕망의 문제다. 숱한 경쟁을 뚫으며 상위로 오르려는 결핍된 욕망과 엄연히 존재하는 계급, 신분의 관점이 투사되어 있다는 것이다.
카드의 도상으로 봤을 때 계급은 중세시대나 왕정시대의 계급을 가리키지만, 그것이 현재의 계급문화와 하등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서 도상의 시대적 정의는 무의미해진다. (필자는 이 카드의 무늬가 상징하는 바를 전병택 작가의 작품을 통해 구체적으로 처음 알았다.)
스페이드: 검과 군인
다이아: 돈과 상인
하트: 성배와 성직자
클로버: 곤봉과 농부
흥미로운 건 아슬아슬한 카드 탑의 모양이 말해주듯, 그래봤자 위태로운 형편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결국 신분이든 위계든 계급이든 그 무엇인들 얻기 위해 피나는 사투를 벌이며 기어오른들, 나아가 능력과 성공에 매달린들 매사에 불안한 인간들이란 거푸집은 일그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쌓아 올린 카드는 그저 그렇게 될 줄 알면서도 욕망하고 이루기 위해 종잇조각 같은 유무형의 사다리에 기대는 인간의 헛된 욕구와 투쟁적 삶을 여실히 보여준다. 성공하는 사람보다 실패하는 사람이 더 많다면 그 길은 보편적인 선택이 아니라 선택의 여지가 없는 소수만이 떠나는 특수한 길일뿐임을 차갑게 내보인다.
4. 불규칙한 탑과 캐릭터: 현실과 이상의 모순
그러나 몇몇 작품에서의 카드 탑은 수직적이지 않다. 그야말로 불규칙하게 구성되어 있다. 이는 교훈적 상투성을 이탈하는 조형적 장치이자 작가의 의도가 녹아 있는 고의적인 배치(재구성)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본래 태어나면서부터 계급이란 부과되는 것이 아니며, 그런 사회는 바람직하지 않음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작가의 의도는 캐릭터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된다. 작가의 작품에 종종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자본주의 매체의 표상이면서 가공된 존재들이다. (배트맨, 뽀로로, 아이언 맨, 피에로, 톰과 제리, 앨리스, 올빼미 등)
이들 캐릭터는 실체가 아니지만 미디어를 통해 널리 전파된 탓에 친근함이 물씬하다. 그로 인해 관람자들의 긍정적인 시선도 한 몸에 받고 있다. 하지만 드러남이 전부는 아니다. 그 내부엔 작가가 전하고픈 메시지가 놓여 있다.
현실과 이상의 거리감을 말해주는 두 얼굴로써의 캐릭터
작가 자신이 바라는 희망적인 세상을 투과시키는 수단으로써의 캐릭터
실제로 이 캐릭터들은 현실감이 없다. 만화 속 주인공이거나 만들어진 영웅들, 이상화된 대상이요, 상황을 예시하는 존재다. 그러나 이들이 앉아 있는 곳은 다분히 현실적인 공간, 더 정확히는 현실을 대리화한 카드 위다.
이 모순적인 상황이 뜻하는 것은 수직적이지 않게 자유분방한 양태의 카드 탑과 같다. 즉,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도구이자 가시적인 규율과 법칙, 보이지 않는 틀에서의 자유로움을 상징하는 양가적 입장을 모두 아우르는 이미지라는 것이다. 동시에 그 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위태위태한 삶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현재를 반추하는 거울이기도 하다.
5. 맺음말: 당신은 어떤 카드를 선택할 것인가
전병택의 그림들은 들여다볼수록 겉과 다름을 발견하게 된다. 화려한 컬러와 친숙한 도상 탓에 호기심으로 접근하기 쉽지만, 내용은 꽤나 짙은 사회적 문제를 담아내고 있다. 따라서 철학적인 이해와 개념을 제외한 채 단순히 캐릭터만 놓고 해석한다면 그만큼 아쉬움이 도드라질 수밖에 없다. 작가의 시점을 파악하는 것이 그의 그림을 간파하는 핵심이다.
한편 카드게임은 확률게임이다. 운이 좋으면 이기기도 하지만 지기도 한다. 여기에 요행이란 없다. 그저 말 그대로 확률만이 존재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승부에 집착하고 성공을 기원한다. 언제 으스러질지 모를 탑을 쌓으면서 순간의 선택에 매몰된다. 이때의 노력은 '무엇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해 관대할 뿐, '어떻게 살 것인지, 어떤 방향으로 걸을 것인지'에 대한 노력에는 인색해진다.
그런 점에서 전병택의 그림들은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으며, 우리에게 자문자답의 기회를 준다.
"당신은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 중에서 가장 올바른 것을 선택하는 '선택의 미학' 앞에서 무엇을 집어들 것인가?"
성공이라는 욕망의 실현, 계급사회 최상위로의 진입, 과거와 다른 미래를 위한 모든 것들 앞에서 우린 어떤 카드를 내놓을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이룰 수 있는 근거와 방법, 가치와 목적 등은 분명한가.
아마도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여러 대답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내 앞에 다가설 미래는 단수가 아니라 복수라는 사실이다. 선택의 수와 행동의 수, 결과의 수가 반드시 일치하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그게 삶이다. 전병택의 그림들은 이 지점을 우회적으로 관통하고 있다.